스페인은 유럽의 과거를 보존하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한때는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만큼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다른 데서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진 소리들과 냄새들과 직업들. 물건을 사라고 구성지게 뽑아대는 사람의 목소리, 집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호객 소리, 손수레와 당나귀가 멘 광주리에 담긴 과일, 생선, 꽃, 이 세상을 더 풍요하면서도 더 가난하게 만든 사회 정의와 기술과 대기업 때문에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그 모든 것 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이 이 책을 출판했을 때가 1990년대 초반인 걸로 안다.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가니 스페인의 세태도 분명히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가 시장바닥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쓴 토막글을 메모해 두었다. 우리의 재래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이 어찌 스페인만의 문제일까? 아마도 유럽의 모든 곳 아니 사람이 복잡하게 모여드는 이름하야 문명화된 곳은 이같은 변화의 바람을 피해갈수 없을 것이다. 사람도 늙어가는데 하물며 그속의 사람사는 공간이 변하지 않고서야 과연 문명이라고 표현할수 있을까? 단지 변해가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며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뿐이다. 변화의 속도는 아마 구성원의 기질과도 연관될 것이다. 그것보다 스페인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동서양 문화 용광로melting pot라서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30년이 지나버린 이 시점에서 스페인의 재래시장에서 서민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낯선 땅의 시끌뻑적찌근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서양은 서민들도 세련되고 고상하다는 그러한 환상을 무참히 깨고싶다. 그냥 사람사는 곳은 똑같다고,
스페인의 시장바닥에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Fabada Asturiana를 먹었다는 세스 노터봄의 글귀를 보고 인터넷을 검색하였다. 먹어본 것도 같다. 통조림으로,
이제는 다국적 교류의 시대이니 웬만한 음식은 창고형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 이것과 비슷한 소세지가 들어간 콩 스튜 통조림을 자주 사오곤 하셨다. 순대가 아닌 소세지만 들어가 있을 뿐, 이 스페인의 순대국이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안선은 단조롭고 평야는 좁으며, 남쪽은 메세타(Meseta)의 북쪽 한계인 칸타브리아(Cantcbrica) 산맥을 등지고, 서쪽은 산지를 사이에 두고 이베리아 반도의 북서쪽을 차지하는 갈리시아(Galicia) 지방과 접해 있다. 비스카야(Viscaya) 만에 면해 있기 때문에 기후는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온난 다습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며, 연 강수량도 1,000mm 이상이다. 칸타브리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은 모두 짧고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하류에 작은 선상지를 발달시킨 곳도 있다. 고산 지대에 있으며, 10월에서 5월까지 눈이 내린다. 겨울엔 주로 비와 화창한 날이 번갈아가며 있다. 위키백과
고산지대라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기름기 있는 음식을 즐겨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추웠을 테니까, 그래서 콩과 돼지의 느끼한 조합으로 스튜를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음양오행에서 콩과 돼지는 水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에너지 저장고의 역할을 한다.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라고 하지만 겨울철 저온의 습한 날씨라면 우중충한 기분과 함께 스산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적당한 기름기와 따뜻한 독주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아주 추울때 재래시장에서 따뜻한 순대국에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 순대국은 아주 추울때 먹어야 제맛이다.
스페인의 서민들은 Fabada Asturiana에 와인을 곁들여 먹을 것인가? 순대국의 느끼함을 새우젓, 들깨, 시뻘건 다대기로 메꾸어주는 조합을 그들은 어떤 식으로 해결했을지 궁금하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느끼함이란 생소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맛본 통조림 요리에서는 스튜에 녹아들어 있는 신맛이 돼지와 콩의 느끼함을 상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던거 같다. 신맛은 木에 해당되어 水生木으로 강한 水의 기운을 흡수발산 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매운 성분이 첨가되는 경우는 목의 발생력을 극대화 시켜 뿜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에 꽃이 피는 것(木生火)을 火의 작용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맵다는 것을 金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작용의 측면에서 火로 보기도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속이 퍼지는 느낌이 들고 땀을 흘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술의 속성도 火로 본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구도자들은 살면서 단 한번 만이라도 성 야고보 성인이 뭍혀있는 그곳에 함께있기 위해서 아스투리아스 지방까지 다다랐을 것이다. 이제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그러나 춥고 배가 고프다. 더 나아갈 기력도 없다. 영적인 갈구함을 지속시킬 정신적 동인도 육체적 무너짐과 환경적 혹독함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무고개의 19고개에서 최극의 시련이 다가왔다.
재래 시장의 마음좋은 아즈매는 그 구도자에게 따뜻한 Fabada Asturiana를 말아주지 않았을까? 와인과 함께,
그러다가 눌러앉았다는…
(이건 아니다. 그러나 수컷 총각적 본성에 충실한 나는 아즈매가 아름답게 보여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