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한다. 특히 원인도 없이 받는 고통이나 핍박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알고서 얻어 맞는 폭력도 아파 죽겠는데, 갑자기 당하는 폭력은 얼마나 황당하고 힘들까? 아픔에 더하여 억울함까지 덧붙여지니 말이다. 즉,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이 짬뽕되어 무한확장된다. 그리고 가학자에게 분노가 치성하여 ‘나’의 마음에는 아픔에 대한 분노와 적에 대한 분노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타인이 나에게 주는 정신적 가학도 마찬기지,
그리스도교 신자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수난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기위해서 대신 희생당하셨다는 원대한 주입식 이해가 따르지만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나’라는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느님이 초딩도 아니고, 그런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불교에서는 용서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지와 말과 행동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며, 그 업(Karma)의 발현은 누구도 가로챌수 없다. 따라서 용서란 말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지 상대방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적이 나를 괴롭힐 때, 그가 받을 업(Karma)의 결과를 생각하며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과거의 빚을 갚을 기회를 준 것에 기뻐하며 감사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이종복 옮김
그리스도교 수행자들이나 불교의 두타행자들이나 기승전-고행으로 삶을 끝마친데는 원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 수행의 접점, 고통(一切皆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