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2018년)부터 올해(2019년) 8월까지 저의 블록체인 기반 스팀잇 블로그에 유럽 여행기의 테마로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올립니다. 여행의 주제는 서양 전통 수도원 탐방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틈틈히 가고 싶은 곳을 조사하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여행을 계획 하였습니다. 그래서 5월 8일부터 43일간 유럽여행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스페인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를 둘러보았습니다. 스팀잇은 여타 개인 블로그와 다르게 글이력을 주제별로 열람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의 지난 글들을 다시 재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은 수정 및 정리할 계획입니다.
내일(2019년 5월 7일)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다.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인간의 숙명을 생각한다면 굳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떠나가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여행전기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스페인만을 고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통 자연철학에 관심을 두고 (의도와는 다르게?) 공부해 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 결국에는 ‘영성’이라는 주제로 수렴되었다. 그래서 앞일을 모르는가 보다. 10년전에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신해철님의 노래 제목처럼 ‘50년 후의 내모습’은 어떨까?
본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30대가 된 이후로는 성당에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동양의 영성 전통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가톨릭은 마음의 고향과 같다. 절에 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당에 있을 때가 마음이 더 편안하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던 것이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늘 기도하셨던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꼬꼬마부터 대학 학창 시절까지 주일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왔고 신부님이 된 몇몇 친구들이 있어서일까?
영성 흔적을 쫓아서 선택한 곳이 16세기 스페인의 이냐시오 성인, 아빌라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 성요한 이었다. 이분들의 영적 서적과 관련된 수도원 역사 서적들을 읽으면서 서양 수도원 전통의 체계화에 정신적이고 실천적 디딤돌이 되는 분이 베네딕토 성인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베네딕토 성인과 이분들과의 사이에도 유명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베네딕토 성인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는 『규칙서』 때문이다. 공동체 생활의 규범을 다룬 『규칙서』에는 그 글을 쓴 베네딕토 성인의 사회/시대적 숨어 있는 맥락적 배려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에는 성인의 은둔 생활 동굴 수행터 위에 지어졌다고 하는 ‘수비아코 수도원’에 방문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예수회’의 이냐시오 발자취를 다시 밟고 돌아올 생각이다. 여행이 시작된 계기가 이냐시오였고 로마는 제도화된 가톨릭의 총본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사형당하셨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팔로워들이 지배당했던 그 나라 로마에서 영적 지배자로 군림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삶은 군림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생사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나는 개인적으로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랑질’하는 껍데기가 되어서도 안된다. 모든 수행 전통의 깨달음 속에는 ‘겸손함’, ‘온유함’, ‘자비심’이 흘러 넘쳐나서 드러나게 프로그램되어있다.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정신병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당시 무대뽀 수행자들은 ‘원죄’라는 이름의 강박적 옭아 메어짐으로 제도권 교회의 정치적 선동과 권위에 고정관념화된 경향이 많았다. 물론 시대만 다를 뿐 지금도 그런 거 같긴 하다. 수행자들에게는 ‘해탈’, ‘천국’ 이런 것일 테고, 자본주의시대의 일반인들에게는 ‘돈, 이성, 명예’ 이런 것들이겠지. 그 목적을 수행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죄와 고통에 대한 편협한 집착은 오히려 우울증을 유발하고, 삶의 중요한 에너지인 공격성을 억압하도록 조장한다. 억압된 공격성은 잠재적 공격성으로 표출된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틀어 공격적 충동은 타종교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때로 심한 자기 공격은 영성의 특징이 되기도 했다. 인간 정신의 구조를 도외시한 채 자신에게 분노했다. 자신에게 잔인한 자는 무의식적으로 주위의 사물도 거칠게 다룬다. 사물과 피조물에 하느님이 현존하심을 느끼지 못한다. 베네딕토의 영성은 공격적 정서에서 자유롭다. 수도교부들은 인간의 신성을 믿었다. 인간에게서 죄를 먼저 보지 않고 신성을 보았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하셨으므로 선하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 안에 계시다. (중략)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중략)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가? 베네딕토는 제57장에서 세 가지 태도를 제시한다. 겸손, 순명, 탐욕에서의 자유, 겸손은 기술자artifex는 ‘예술가’를 뜻하기도 한다가 일 자체에만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승은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기 기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노동을 악용하면 안된다. 안셀름 그륀의 베네딕도 이야기
20세기 인도의 한 영성인은 다음과 같은 실천 철학이 있었다. 이쪽의 신과 저쪽의 신이 이름은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것이 많다. 무엇이 중한디? ‘나’라고 불리는 ‘피터’는 이름일뿐 이름이 ‘나’를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 ‘이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본질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은 단지 ‘이르게 하는 것다가서게 함, 소통하게 함’일 뿐이다. ‘종교’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영성’이라고 퉁치기를 좋아한다.
행위만이 본분이요. 그 열매는 아니니라. 행위의 열매를 동기로 삼지 말 것이며, 행위를 피하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바가바드기타 제2장 47]
그대들의 권리(right)는 일하는 것이지 그 열매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자기 노예에게 말한다. “맡은 일이나 하고 농장에서 열매를 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너는 내가 주는 것만 받으면 된다.” 신(神)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제한한다. 그는 우리에게, 원한다면 일할 수 있다고, 그러나 일삵은 일체 자기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임무는 그분께 기도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길은 곡갱이로 땅을 파고 강의 쓰레기를 치우고 우리의 뜰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기타
베네딕토 생전의 시대상은 정치 ·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분명히 더 어려웠다. 이른바 민족대이동 시대였다. 새 민족들이 이탈리아를 덮쳤고 국토는 초토화되었다. 로마제국은 멸망했다. 고대문화는 새 민족을 도야할 힘이 없었다. 정신적 공백이 생겼다. 재정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 봤자 새로운 파괴가 노도처럼 밀려와 수확을 작살내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다. 교회도 내부 분열을 겪었다. 아리우스 이단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재일치의 기운을 박탈했다. 아리우스파와 가톨릭 교회의 분쟁뿐만이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도 친비잔틴 세력과 친로마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로마제국 멸망 당시의 교회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고 버팀목이 되어 주지도 못했다. 이처럼 갈 곳 잃고 분열된 세상에서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승들을 위한 『규칙서』를 썼다. 『규칙서』에서는 시대의 암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베네딕토는 난세를 한탄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는 자생력 있는 소공동체를 세웠다. 안셀름 그륀의 베네딕도 이야기
욕구를 자르면 영성은 공격성을 띤다.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 남에게는 엄격함으로 표출된다. 회의(懷疑)를 억압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거나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 다른 영성의 길을 가는 사람 모두와 싸운다. 자신의 억압된 그림자 세계로 내려갈 용기를 지닌 사람만 이러한 분열에서 자유롭고, 자신과 타인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 자신의 억압된 그림자 세계로 내려갈 용기를 지닌 사람만 이러한 분열에서 자유롭고, 자신과 타인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억압된 부분을 남에게 투사하지 않고 남과 더불어 내적 변화의 길을 간다.
초기 수도승생활에서 겸손이 낮춤과 ‘흙’의 뉘양스만 지닌 것은 아니다. 온유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어로 ‘겸손하다’는 말은 타페이노스tapeinos지만, 프라이스 prays를 ‘겸손하다’로 번역하는 경우도 잦다. 프라이스는 본디 ‘자비, 온유’를 뜻한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에게 온유는 영적 아버지의 표상이다. 온유란 자타自他를 부드럽게 대함이며 자타의 흠결과 약점에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한테서는 겸손한 자아인식으로 마음 깊이 변화되었음이 느껴진다. 신약성경은 겸손을 하느님에 대한 태도로만 보지않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도 이해한다. 그래서 겸손을 온유, 부드러움, 관용 등과 한데 묶어 생각한다. 안셀름 그륀의 베네딕도 이야기
기도prays가 ‘겸손하다’는 의미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성스러움이 전제되야할 것이고 정성스러움이란 자만심과는 반대되는 성정일 것이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겸손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ps.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수행터도 방문할 예정이다. 전기 없이 그대로 여행지에서 작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