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생화(枯楊生華)

몬세라트 수도원(스페인)

주역(周易)의 대과(大過)괘에 고양생화(枯楊生華)라는 표현이 있다. “마른 버드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아있다.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팔로워들이 그가 죽은 뒤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미 1,000여년전 스페인의 깊은 산속에 이 수도원이 세워졌고 종교적인 이유에서이건 혹은 아름다운 절경 때문이건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나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성모마리아보다 이 수도원 주위를 맴맴 돌면서 수도원 위에서 혹은 아래서 수도원을 바라보는 시간을 즐겼다. 수도원 전체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산책 코스에서 고사목(왼쪽 사진)을 발견했다. 물론 완전히 죽어서 이 나무에 생명이 자라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순간 죽고 살고 죽고 살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세포의 재생과 죽음 중에서 세포의 죽음이 우세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순간 살고 죽고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포의 죽음이 완전 우세해져서 재생이 멈추면 이것을 생물학적 죽음이라고 표현할뿐 그 다음에 다시 재생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몬세라트 수도원

하늘이 참 맑다.

하늘을 창천(蒼天)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뜻을 본떠서 역(易)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있다.

生生之謂易

낳고 또 낳는 것을 역(변화)이라고 한다.

낳고 낳는 것을 창(蒼)이라고 표현한다. 곳집에서 푸른 풀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문자(초(艸) + 밥(食) + 땅(口) = 蒼)이다. 죽음의 변화는 죽음의 죽음일 터이고 그렇다면 태어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낳고 또 낳는 것을 변화(易)라고 표현하지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태어남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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